피로가 쌓이거나 입안이 헐었을 때, 혹은 운동량이 많아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 흔히 추천되는 영양소가 있다. 바로 ‘비타민 B군’이다. 약국이나 건강기능식품 매장에서는 비타민 B군을 피로 회복, 에너지 생성, 신경 건강을 위한 영양소로 소개한다.
실제로 비타민 B군은 우리 몸이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을 이용하고 적혈구와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과정에 폭넓게 관여한다. 하지만 한 가지 오해는 바로잡아야 한다. 비타민 B군 자체가 칼로리를 제공하거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음식으로 섭취한 영양소가 정상적으로 대사될 수 있도록 효소를 돕는 ‘조효소’ 또는 조효소의 재료에 가깝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탄수화물과 지방은 연료이고, 비타민 B군은 연료를 제대로 태우도록 돕는 점화장치와 각종 부품이다. 부품이 부족하면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달리지 못하지만, 이미 충분한 부품이 있는데 계속 추가한다고 자동차의 최고속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비타민 B군은 하나가 아니라 여덟 가지
비타민 B군은 단일 영양소가 아니다. 비타민 B1인 티아민, B2 리보플라빈, B3 나이아신, B5 판토텐산, B6, B7 비오틴, B9 엽산, B12 코발라민 등 총 여덟 가지 영양소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은 대부분 수용성 비타민으로 체내 저장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음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다만 “수용성이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전혀 해롭지 않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일부는 고용량으로 장기간 섭취할 경우 신경 손상이나 간 기능 이상, 검사 결과 오류와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비타민 B1은 포도당과 아미노산, 지방 대사에 필요한 여러 효소의 보조인자로 작용한다. 특히 탄수화물을 많이 사용하는 뇌와 신경계, 근육 기능에 중요하다. 체내 저장량이 많지 않고 반감기도 짧아 꾸준한 섭취가 필요하다.
비타민 B2는 FMN과 FAD라는 조효소의 재료가 되어 에너지 생성과 지방 대사, 세포 성장에 관여한다. 비타민 B6를 활성형으로 바꾸고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나이아신으로 전환하는 과정에도 필요하다.
비타민 B3인 나이아신은 NAD와 NADP의 재료다. NAD는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에너지를 세포가 사용하는 ATP로 전달하는 대사 과정에 광범위하게 참여한다. 인체에서는 400개가 넘는 효소가 NAD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 B5는 조효소 A, 즉 CoA를 구성한다. CoA는 지방산의 합성과 분해, 아세틸-CoA 생성, 에너지 대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비타민 B5는 거의 모든 식품에 어느 정도 들어 있어 심각한 영양실조가 아니라면 단독 결핍은 매우 드물다.
비타민 B6는 100가지가 넘는 효소 반응에 관여하며 특히 단백질과 아미노산 대사에서 중요하다. 신경전달물질 합성, 글리코겐 분해, 포도당 신생, 면역 기능과 헤모글로빈 형성에도 관여한다. 단백질 섭취량과 운동량이 많은 사람에게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타민 B7인 비오틴은 지방산, 포도당, 아미노산 대사에 필요한 여러 카복실화효소의 보조인자다. 흔히 머리카락과 손톱 영양제로 알려졌지만, 결핍이 없는 사람에게 고용량 비오틴이 탈모나 손톱을 확실하게 개선한다는 근거는 제한적이다.
비타민 B9인 엽산은 DNA와 RNA를 합성하고 세포가 정상적으로 분열하도록 돕는다. 적혈구를 만드는 과정에도 필요해 부족하면 거대적아구성 빈혈이 발생할 수 있다. 임신 초기 태아의 신경관 형성에 중요하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 특히 강조된다.
비타민 B12는 DNA 합성, 적혈구 생성, 신경세포 유지에 필요하다. 자연적으로는 주로 육류와 생선, 달걀,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어떤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특히 중요할까
비타민 B군은 특정 종목만을 위한 영양소라기보다 모든 운동인에게 필요한 기본 영양소다. 다만 마라톤, 사이클, 철인3종, 장거리 클라이밍처럼 훈련량이 많고 에너지 소비가 큰 지구력 운동 선수는 식사량과 영양 밀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이나 크로스핏, 축구, 농구처럼 탄수화물 사용량이 많은 운동에서는 B1·B2·B3·B6가 관여하는 에너지 대사가 원활해야 한다. 근력운동이나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에게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대사에 참여하는 B6와 세포 생성에 필요한 엽산·B12가 중요하다.
그러나 운동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고함량 비타민 B군을 복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전문가 합의문도 영양소가 실제로 부족한 경우에는 결핍을 교정함으로써 건강과 운동 수행을 회복할 수 있지만, 영양 상태가 이미 정상인 선수에게 보충제를 더 투여한다고 경기력이 계속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운동인 가운데 특히 주의해야 할 사람은 체급을 맞추려고 식사량을 지나치게 줄이는 선수, 장기간 저칼로리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한두 가지 음식만 반복해서 먹는 사람, 육류와 유제품을 모두 제한하는 비건 운동인이다. 운동량은 많은데 섭취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면 비타민 B군뿐 아니라 철분, 칼슘, 비타민 D, 아연 등 여러 영양소가 동시에 부족해질 수 있다.
따라서 비타민 B군은 ‘운동 전에 먹으면 힘이 솟는 부스터’라기보다 정상적인 에너지 대사와 신경·혈액 기능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기초 영양소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어떤 음식에 많이 들어 있을까
B1은 돼지고기, 현미와 통곡물, 콩류, 견과류에 풍부하다. 특히 흰쌀밥과 정제된 밀가루 식품 위주로 먹고 육류와 콩류 섭취가 적다면 B1 섭취가 낮아질 수 있다.
B2는 우유와 요구르트, 달걀, 육류, 간, 아몬드, 버섯 등에 들어 있다. B3는 닭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 참치와 연어 같은 생선, 땅콩, 통곡물에서 섭취할 수 있다.
B5는 닭고기, 소고기, 달걀, 우유, 버섯, 감자, 아보카도와 통곡물을 포함해 거의 모든 식품에 널리 분포한다. B6는 생선, 닭고기, 소고기, 감자와 고구마 같은 전분질 채소, 병아리콩, 바나나 등에 들어 있다.
비오틴은 달걀노른자, 간, 견과류, 연어와 일부 채소에 들어 있다. 엽산은 시금치와 깻잎을 비롯한 녹색 잎채소,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콩류, 오렌지와 키위 등에 풍부하다.
B12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조개류, 생선, 달걀, 우유와 치즈 등 동물성 식품이 주요 공급원이다. 김이나 발효식품에 B12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함량과 생체이용률이 일정하지 않아 비건이 이를 안정적인 공급원으로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건은 B12 강화식품이나 보충제를 통해 섭취량을 관리해야 한다.
결국 비타민 B군을 자연스럽게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미나 잡곡밥, 살코기 또는 생선, 달걀, 콩과 두부, 녹색 채소, 과일, 유제품을 한 끼 안에 적절히 구성하는 것이다.
부족하면 나타나는 증상은
비타민 B군 결핍은 초기에는 피로, 무기력, 집중력 저하, 식욕 감소처럼 뚜렷하지 않은 형태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증상만으로 비타민 B군 결핍을 진단할 수는 없다. 수면 부족, 과도한 훈련, 빈혈, 갑상선질환, 감염, 우울과 불안, 에너지 섭취 부족 등도 비슷한 증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B1이 부족하면 식욕과 체중 감소, 근력 저하, 혼란, 단기기억 저하, 손발의 감각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 각기병이나 베르니케 뇌병증으로 진행해 보행 이상과 의식 변화, 심장 기능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만성적인 과음은 B1의 흡수와 저장, 활성화를 모두 방해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위험요인이다.
B2 결핍은 입술과 입꼬리가 갈라지는 구순염·구각염, 혀의 통증과 붉어짐, 피부염, 인후통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B3가 심하게 부족하면 피부염, 설사, 인지 및 신경학적 이상이 함께 나타나는 펠라그라가 발생할 수 있다.
B5 결핍은 매우 드물지만 심각하게 부족하면 피로와 두통, 수면장애, 과민함, 식욕부진, 손발의 저림이나 화끈거림이 나타날 수 있다.
B6가 부족하면 입 주변 피부염, 혀의 염증, 빈혈, 우울감과 혼란, 면역기능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B7 결핍은 탈모, 피부 발진, 결막염, 무기력과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드물다.
엽산과 B12 결핍은 적혈구가 정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거대적아구성 빈혈을 일으킬 수 있다. 피로, 창백함, 숨참, 두근거림, 운동능력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B12가 부족하면 빈혈이 심하지 않더라도 손발 저림, 균형감각 저하, 기억력 변화 같은 신경 증상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 B12 결핍으로 인한 신경 손상은 치료가 늦어질 경우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엽산과 B12 부족은 빈혈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빈혈은 피로와 쇠약, 숨참, 어지러움 등을 유발한다.
이런 사람은 보충제나 검사를 고려해야 한다
가장 먼저 고려할 대상은 혈액검사 등을 통해 실제 결핍이 확인된 사람이다. 그 밖에도 식사 제한이 심하거나 장기간 저열량 식단을 유지하는 사람, 비건과 일부 채식주의자,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 고령자, 위장관 수술을 받은 사람, 크론병이나 셀리악병 등 흡수장애가 있는 사람은 전문가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위축성 위염이나 악성빈혈이 있는 고령자는 음식에 들어 있는 B12를 제대로 분리하고 흡수하지 못할 수 있다. 위와 소장 질환이 있거나 위장관 수술을 받은 사람도 B12 결핍 위험이 높다.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은 장기간 사용하면 B12 흡수와 혈중 농도를 낮출 수 있다. 위산억제제 역시 음식 속 B12 흡수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장기간 복용 중이면서 피로, 빈혈, 손발 저림이 있다면 의료진과 B12 검사를 상의하는 것이 좋다.
만성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식사를 거른 채 술을 마시는 사람, 지속적인 구토가 있는 사람, 비만대사수술을 받은 사람은 B1 결핍 위험이 크다. 특히 비만대사수술 후 반복적인 구토와 보행 이상, 혼란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단순 피로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음식 속 엽산뿐 아니라 하루 400㎍의 엽산을 보충제나 강화식품으로 섭취하도록 권고된다. 태아의 신경관은 임신 사실을 알기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므로 임신을 확인한 뒤에야 복용을 시작하는 것보다 임신 전부터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함량 제품,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비타민 B군 제품을 고를 때는 ‘함량이 높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 B6를 장기간 과다하게 복용하면 감각신경병증이 발생해 손발 저림, 감각 둔화, 균형 및 보행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여러 종합비타민과 에너지 보충제를 함께 먹으면 B6 섭취량이 중복될 수 있으므로 전체 함량을 확인해야 한다.
고용량 나이아신은 얼굴과 피부가 붉어지고 화끈거리는 홍조를 유발할 수 있으며, 약물 수준의 고용량은 간 기능과 혈당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나이아신과 일반적인 비타민 보충제는 구분해야 한다.
엽산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B12 결핍으로 발생한 빈혈은 가려지면서 신경 손상은 계속 진행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원인을 확인하지 않은 채 빈혈이나 피로를 고용량 엽산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비오틴은 독성이 낮은 편이지만 고함량 제품을 복용하면 갑상선호르몬, 성호르몬, 심근경색 진단에 사용되는 트로포닌 등 일부 혈액검사 결과를 잘못 나오게 할 수 있다. 건강검진이나 혈액검사를 앞두고 있다면 비오틴 복용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비타민 B2를 복용한 뒤 소변이 형광빛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은 대부분 흡수되지 않거나 남은 리보플라빈이 배출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자체로 신장이 나빠졌다거나 비타민이 몸에서 아무 효과 없이 빠져나갔다는 뜻은 아니다.
결론은 ‘고함량’보다 ‘필요 여부’
비타민 B군은 피로를 마법처럼 제거하는 각성제가 아니다. 하지만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대사, 신경 기능, 적혈구 생성과 세포 분열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다. 결핍된 사람에게는 피로와 신경 증상, 운동 수행 저하를 개선하는 중요한 치료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이미 충분히 섭취하는 사람이 고함량 제품을 추가한다고 체력과 근육이 비례해 증가하지는 않는다.
운동인은 먼저 충분한 에너지와 탄수화물, 단백질을 섭취하고 통곡물과 육류·생선·달걀·콩류·채소·과일을 다양하게 먹어야 한다. 그다음 식사 제한, 채식, 질환, 약물 복용, 위장관 수술 등 결핍 위험이 있다면 검사와 상담을 통해 부족한 영양소를 선택적으로 보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타민 B군의 핵심은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는 데 있다.
